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@lunamoth
Created February 15, 2017 12:1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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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우리 사랑의 지적 기원> - 이응준
이 얼음의 책을 하루에 단 세 쪽씩만이라도 읽어낼 수 있다면
문득 햇살이 스치고 지나갔을 뿐인데 눈물이 모래바람처럼 고이고
그 사이 가을이 오고
먹고 마시는 시간들이 인생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평화를 얻을 텐데
나는 너무 많은 노래들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도 죄다.
저 불꽃의 책을 하루에 단 한 줄씩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
영원하리라 여겼던 한 나라가 내 가슴속에서 무너졌는데 정작 이 세상에서는
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
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 듯 사랑이 찾아오고
사랑에도 주석학(註釋學)이 있다면, 그래서 부서지는 별빛과 밤의 꽃들과
아무리 잊었다고 다짐해도 결국 잊지 못한 너를 아무도 알 수 없게 어디
짐승의 묘비명(墓碑銘) 속에 다만 몇 글자로 기록할 수 있다면 그러나
너는 나의 너무 많은 추억이니 그것도 죄다.
이별이여. 이 별에서의 사랑이여.
인간이 인간으로서 진정 행복해지는 법 같은 어둠들은 전부 어둠뿐이니
그 사이 가을이 사라져 밤하늘에는 별들의 바다 대신 첫눈이 파도친다 한들
어쩌면 이 희극에는 뭔가 다른 뜻이 있겠지, 꽃이 불타오르는 것들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.
언젠가 이 비극에도 분명 다른 사랑이 숨어들겠지, 저 불꽃이 나의 꽃은 아니듯.
그러나 만약 이 세상이 너처럼 불타버려도 재가 될 수 없는 꽃이라면
우리가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모든 것들이 폭풍이라면
대체 나는 어디에 있는가. 왜 다시 어둠처럼 울고 있는가.
사랑이란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하였다가
아무리 알아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기에 용서하고 마는 것.
이 얼음의 책 속에 홀로 서서, 저 불꽃의 책을 와락 끌어안고서,
이제 겨우 이제
겨우 단 하루가 지나갔을 뿐인데
이것은 너의 죽음인가, 나의 모래바람인가. 이별이여.
이 별에서의 사랑이여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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