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@lunamoth
Created March 27, 2017 03:0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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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백합과 구름의 연인>
- 이응준
이것은 아름다운 말이 아니다. 백골 같은 말, 그저
서글픈 말이지만, 또한 쓸쓸한 말이기도 하지만,
누구나 부서지기 쉬운 이 세상에서
아직도 슬픔이 우리의 청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
당신과 나 역시 아직도 괴로워 서성이고 있는 사랑이라고 말하는.
백합의 연인이란 헤어져서 잊혀져가고
반면 죽게 되는 그 순간까지 가슴 속 저 멀리 있으나 사라지진 않는 까닭에
내가 당신을
당신이 나를
칼이 지나간 듯 고심한 상처 같은 것.
지상의 모든 백합들이 우주의 가장 어두운 밤 한가운데서
파괴되는 백색왜성들처럼 떨어져 내리는
이 계절의 끝과 그 사흘이 다 지나도록
도무지 아무런 희망이라든가 심지어는 절망의 소식조차 없어서
나는 비로소 냉정한 시를 짓고
오래 전 애인이 죽기 전에 쓴 마지막 책을 짐승에게 선뜻 내던져버리고
낙타의 먼지무덤이 신기루가 되는 모래사막 위에서
하나님과 방주를 함께 불태워버렸다.
척박하고 알량한 삶이여.
백합의 연인이란 하루에 한 가지씩 흩어지면서 흘러가 결국에는
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구름의 연인.
이것은 자랑스러운 말이 아니라
당신이 나를 위해 강해지느라 휘둘린 모진 어둠 같은 것일 뿐.
나의 수모와 참회는 백합과 구름 사이에서,
청춘의 그 괴로운 자리에서 사랑 대신 슬픔을 결심하였으니 당신은
당신만큼은, 가슴 속 저 멀리 사라지진 않는 까닭에
백합의 연인은,
모든 것들이 다 끝나버리고 난 뒤였으나
백합과 구름의 연인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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